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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기자회견
이승만 대통령 기& 2024-02-13 20:47:21 | 조회: 202
이승만 대통령 기자회견





32 이승만, 정부수립후의 제반문제 기자회견 1948년 05월 26일 경향신문, 조선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7권

33 이승만,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중심제 및 임정계승 등 언급 1948년 06월 07일 서울신문,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7권

34 국회의장 이승만, 의원 봉급지불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48년 07월 06일 서울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7권

35 이승만, 헌법통과 등에 관해 기자회견 1948년 07월 12일 동아일보,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7권

36 이승만,총리인선 문제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48년 07월 22일 서울신문, 동아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7권

37 프란체스카,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소감등에 대해 기자회견 1948년 07월 22일 동아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7권

38 이승만, 국무총리 이범석의 승인등 제반문제에 대해 기자회견 1948년 08월 02일 서울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7권

39 이승만, 미군철수계획을 수립할 조미위원 임명 시사 1948년 08월 05일 조선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7권


41 굿펠로우, 李承晩 대통령 기자회견장에 동석하여 정부의 반도처벌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기자회견 1948년 11월 19일 동아일보 자료대한민국사


42 李承晩 대통령, 錢鎭漢 사회부장관 사임 등에 대해 기자와 문답 1948년 12월 24일 대동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9권

43 李承晩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미군철수와 관련해 한국안보에 문제없다고 주장 1948년 12월 28일 서울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9권


44 李承晩 대통령,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활동과 金九·金奎植 포섭거부 등에 대하여 기자회견 1949년 01월 14일 서울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0권


45 李承晩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一民主義에 대해 설명 1949년 01월 28일 연합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0권

46 李承晩 대통령, 북한선거·철병·대일배상문제 등에 대하여 기자회견 1949년 03월 11일 동아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11권


48 李承晩 대통령, 자력으로 국토통일 할 것이라고 기자회견 1949년 04월 24일 동아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11권

49 李承晩 대통령, 영·호남순시를 마치고 기자회견 1949년 04월 29일 자유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1권

50 李承晩 대통령, 韓美軍事協定·서울신문 정간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49년 05월 06일 연합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2권


52 李承晩 대통령, 춘천 주둔부대 월북·언론탄압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49년 05월 12일 자유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2권

53 李承晩 대통령, 韓美軍事協定문제와 내각개조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49년 05월 13일 조선중앙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12권

54 李承晩 대통령, 유엔韓國委員團의 북한접촉에 대해 기자회견 1949년 05월 20일 자유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2권


57 李承晩 대통령, 국회와 정부의 대립 등에 대한 기자회견 중 改憲工作은 불가하다고 강조 1949년 06월 10일 동아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12권

58 李承晩 대통령, 防共동맹 구축이 필요하다고 외신 기자회견에서 언급 1949년 07월 06일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3권

59 李承晩 대통령, 金九 저격 공동조사가 부당하다는 등에 대하여 기자회견 1949년 07월 08일 자유신문,조선중앙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13권

60 李承晩 대통령, 감찰위원회 문제와 학생시위 등에 대하여 기자회견 1949년 07월 16일 서울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3권



61 李承晩 대통령, 蔣介石 총통 초청과 교원대우문제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49년 07월 22일 자유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3권

62 蔣介石 총통, 태평양동맹 결성에 진전이 있었다는 기자회견 1949년 08월 08일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3권

63 李承晩 대통령, 태평양동맹 등에 대하여 기자회견 1949년 08월 12일 자유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3권

64 李承晩 대통령, 미국 원조는 경제원조와 함께 군사원조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기자회견 1949년 08월 19일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3권

65 李承晩 대통령, 태평양동맹과 民族陣營强化委員會문제 등에 대하여 기자회견 1949년 08월 26일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3권

66 李承晩 대통령, 태평양동맹 결성문제·인삼수출문제·귀속재산 불하문제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49년 09월 02일 경향신문, 서울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4권


68 李承晩 대통령, 북한 失地 회복에 자신있다고 기자회견 1949년 09월 30일 동방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4권

69 李承晩 대통령, 유엔과 미국이 무력통일을 삼가는 이유는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기자회견 1949년 10월 08일 조선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14권

70 李承晩 대통령, 내각교체설·토지개혁문제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49년 10월 14일 서울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4권

71 李承晩 대통령, 중국혁명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 유지에 자신감을 피력하는 외신기자 담화를 발표 1949년 10월 14일 조선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14권


72 李承晩 대통령, 공무원 축첩과 선거연기문제에 대하여 기자회견 1949년 12월 09일 자유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5권


74 李承晩 대통령, 일본어선 나포는 맥아더선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기자회견 1950년 01월 27일 서울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6권


75 李承晩 대통령, 일본을 떠나기에 앞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 1950년 02월 18일 국도신문, 평화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6권


76 李承晩 대통령, 개헌안의 국회통과는 힘들 것이라고 기자회견 1950년 02월 24일 서울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6권

77 李承晩 대통령, 총선거 5월 실시를 발표 1950년 04월 07일 국도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7권

78 李承晩 대통령, 애치슨 미 국무부장관의 對韓각서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50년 04월 14일 한성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17권


79 李承晩 대통령, 남북통일·인플레문제 등에 대해 기자회견 1950년 04월 28일 자유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7권

80 李承晩 대통령, 5·6월이 위기이므로 미국의 방위원조가 필요하다고 외신기자회견 1950년 05월 11일 국도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7권






81 이승만 대통령, 38도선 북진하여 한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기자회견 1950년 07월 14일 경제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8권

82 李承晩 대통령, 중공군 참전 등 당면문제에 대해 기자회견 1950년 11월 06일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9권

83 李承晩 대통령, 부역자 처단문제 등에 관하여 기자회견 1950년 11월 13일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19권

84 李承晩 대통령, 중공과의 타협 거부를 기자단에 언명 1950년 12월 12일 부산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19권

85 李承晩 대통령, 미국의 대일강화 지지 기자회견 1951년 01월 26일 민주신보 자료대한민국사 제20권


87 李承晩 대통령, 기자회견석상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에 대하여 언급 1951년 02월 09일 동아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20권


92 이승만 대통령, 38도선 정전 반대 등 기자회견 1951년 06월 09일 민주신보 자료대한민국사 제21권

93 휴전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입장 1951년 06월 30일 FRUS 1951, 604~605쪽 자료대한민국사 제21권


98 李承晩 대통령, 기자회견을 통해 기한부 휴전선에 대한 입장 피력 1951년 11월 26일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23권

99 이승만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한국군의 우수성 강조 1951년 12월 5일 대구매일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23권


101 이승만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1952년 01월 09일 민주신보 자료대한민국사 제24권

102 이승만 대통령의 휴전회담과 정계 재편 구상 등에 관한 기자회견 분석 1952년 01월 12일 민주신보 자료대한민국사 제24권

103 이승만 대통령, 당면 문제 기자회견 1952년 02월 06일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24권


107 이승만 대통령, 휴전회담 및 한일회담 등에 대하여 기자회견 1952년 07월 30일 동아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26권


112 이승만 대통령, 아이젠하워 방한 및 일본군의 참전 문제 등에 대하여 기자회견 1952년 12월 02일 대구매일 자료대한민국사 제27권


116 이승만 대통령, 중국군 철수 등의 조건이 충족되면 통일없는 휴전에 찬성할 것임을 천명 1953년 04월 29일 경향신문 자료대한민국사 제29권

117 이승만 대통령, 정부 환도문제 및 농민회 문제에 대하여 기자회견 1953년 04월 29일 민주신보 자료대한민국사 제29권


119 이승만 대통령, 휴전회담 반대 기자회견 1953년 06월 04일 부산일보 자료대한민국사 제29권












이승만 대통령은 매주 기자회견을 했다 !


趙甲濟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나 일제와 해방, 6·25를 겪은 기자들이 당대에 활동하면서 겪은 비화를 수록한 책이 있다. 사단법인 한국신문연구소가 1978년 발간한 ‘언론 비사(秘史) 50편 원로기자들의 직필 수기(手記)’다. 한국 현대사의 대혼란기를 몸으로 부딪쳐 경험한 50여 원로기자들의 체험담 속에는 당대를 주름잡던 걸출한 인물들의 동정도 비교적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일 년에 한 번 아주 특별한 이벤트처럼 열리는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매주 금요일이면 대통령 기자회견이 있었다고 한다. 빈번하게 대통령을 접한 만큼 기자들의 수기에도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가 전해진다. 그중 이승만 대통령의 유머 감각이나 9·28서울수복 후 첫 기자회견에서의 공방, 전쟁 중에도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대통령의 일념 등을 다룬 원로기자들의 ‘노(老) 대통령’ 회고를 발췌해 소개한다.



▼ 필자 최흥조(崔興朝)

1918년 개성 출생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 중퇴
1945년 황해민보 편집국장
1946년 한성일보 정치부장
1949년 동아일보 취재부장
1952년 중앙일보 취재국장
1952년 신문의 신문사 창업 사장 10년
1975년 8월 집필


당장 신문검열 철폐하라던 이승만 대통령


1950년 6·25동란에 부산으로 피난하였던 이승만 대통령은 9·28 서울수복으로 그의 관저인 경무대로 되돌아왔다. 그때에 몇몇 신문이 서울에서 복간되었다. 그해 10월 중순의 일이다.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평앙을 점령하고 승승장구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여 국토통일의 부푼 꿈이 막 실현되려던 무렵이었다. 치열한 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때이라 전국토는 비상계엄령하에 있었으므로 국방부 정훈국 관장 하에 신문검열제가 엄격하게 실시되고 있었다. 장관의 담화문이 동일지면에 들어갔는데 동아일보는 관례대로 대통령의 것을 5단 표제 머리기사로 하고 관장의 것을 4단표제 중앙부위에 둔 조판대장(臺帳)을 떠서 검열을 받으러 갔더니 당무자는 장관의 것을 ‘톱’으로 하여 대통령의 것과 바꾸어 놓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밖에 없으니 신문사는 판을 고쳤다.


다음날은 예정된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경무대 관저에서 있었는데 이것은 서울 수복 후 최초로 열리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먼저 반가운 어조로 회포를 푸는 말로써 시작한 기자회견은 까다로운 형식을 빼고 흥겨운 대담식으로 진행되었다. 필요한 화제가 다 끝났다고 생각될 즈음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산까지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는 이 처절한 전쟁을 하는 동안에 신문을 만드는 저희들도 애국심에 불타고 있습니다. 공산당을 이롭게 하고 우리나라를 해치는 보도를 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방부 정훈국이 모든 신문에 대해서 검열을 실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사람의 대위가 앉아서 마음대로 대한민국의 언론을 좌우하는 결과가 됩니다. 그는 어떤 기사는 신문에 넣으라고 하고 또 어떤 기사는 신문에서 빼라고 합니다. 제목도 자기 비위에 맞도록 고칩니다. 어제 같은 날은 대통령의 담화문과 국방장관의 담화문을 놓고 장관의 담화문 내용이 중요하니 대통령의 것보다 크게 보도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이래가지고서는 저희들이 좋은 신문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순간 이승만 대통령은 안면근 경련으로 두 볼이 실룩거리는가 하더니 엄숙한 어조로 분연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산당과 전쟁을 하고 있는 까닭은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야.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신문을 검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는 옆에 앉은 공보처장 김활란(金活蘭) 여사를 돌아보더니 말을 계속했다.
“국방부의 정훈국장이라는 사람이 누구요 국방장관에게 훈령하여 즉시 신문검열을 중지하도록 해요.”



신문검열은 즉일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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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솜씨


매주 금요일은 대통령 기자회견 날이다. 이때는 사전에 질문사항을 공보처 당국에 제출하는 일은 없었고 대통령회견 날이면 바로 질문했고 또 이승만 대통령은 즉석에서 답변하는 등 잘 받아넘겼다.


지금도 생각나지만 대개 10시에 중앙청회의실에서 회견이 시작되는데 경무대 경찰서원이 대통령께서 곧 들어오신다고 미리 알려주곤 하였다.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퍽 조촐했고 간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보처 당국자와 국무위원 몇 사람 그리고 비서들이 배석했는데 노(老) 대통령의 ‘유머러스’한 답변에 웃음이 터지기가 일쑤였다. 질문할 때 대통령 각하라고 부른 기자는 없었고 대개 대통령께서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 때마다 아침에 만나서 뭐라고 인사를 했으면 좋을지 기자들이 연구해 보라고 했고 적당한 인사말이 선정되면 상금을 후하게 내리겠다고도 했다. ‘안녕히 주무셨소. 아침 자셨소’ 또 ‘굿모닝’ 등도 우리에겐 맞지 않으니 차라리 ‘어떠시오’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우리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일인(日人)도 그럴싸한 아침 인사말이 있는데 적당한 인사말이 우리에게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끝내 적당한 아침 인사말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老 대통령은 사라져 간 것이다.


경무대에서의 기자회견 날이면 ‘프란체스카’ 여사가 손수 만든 차와 과자 또는 시제(試製) 담배가 나왔다. 같은 탁자에 앉아 노(老) 대통령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버르장머리 없이 느껴져 때로는 안 피우고 있노라면 원래 버르장머리 없는 게 기자이니 체면 차리지 말고 피우라고 권하는가 하면 우리 안사람이 차 끓이는 솜씨가 없어 맛이 없어 안 먹는 것 같다고 프 여사에게 다시 끓여오라고 해 프 여사와 기자들을 당황하게도 했고 또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기도 하였다.


또 어느 때인가 기자회견 때는 기자 질문에 김장흥(金長興) 경무대서장이 뭔가 입을 열었다가 “한 나라의 대통령인 내가 기자 선생님들 앞에서 잘 뵈려고 쩔쩔매는 판인데 자네가 뭘 안다고 입을 여나, 자네도 출세하려면 기자들한테 잘 보여야 돼…”하고 나무라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기도 하였다.


또 그 당시의 일이다. 경무대에서의 회견날인데 허정(許政) 교통부장관이 군용기 헌납기금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자 온 일이 있었는데 이 대통령은 서슴지 않고 “이게 교통부에서 자발적으로 모은 돈이냐 아니면 강제로 모은 돈이냐”하고 물었다. 허정 씨가 자발적이라고 말하자 “나한테 잘 보이려고 강제로 모은 돈이지 뭐야. 내가 다 아는데. 기자들이 이 사실 좀 신문에 써요” 해서 온통 기자회견이 웃음바다가 된 일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역시 능숙한 솜씨로 내외기자회견에 임했고 회견의 분위기는 늘 부드러웠다. 회견이 끝나면 회견 석상에 놓았던 담배를 한 주먹씩 집어 기자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등 자상스러운 일면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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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5, 0650 ]

https://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98993&c_cc=AZ











httpswww.ehistory.go.krviewmoviemediasrcgbn=KV&mediaid=563&mediadtl=3264&mediagbn=DH


1957. 12.31. 동영상


대한뉴스

이승만 대통령 기자회견


제작연도 1957-12-31상영시간 00분 25초

출처 대한뉴스 제 145호


`이승만` 대통령 기자회견.

-이승만대통령 경무대 제1회의실에서 정유년 마지막에 기자회견을 가짐.

-이승만대통령 선거법 개정 등 당면한 내외문제에 대해 정부의 견해를 피력.

출처 대한뉴스 제 145호
2024-02-13 20: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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