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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사로 본 “하남은 한성백제 왕성”<기획4>천왕사지는 왕성 고증의 키…“풍납토성은 왕성으로서 부적격”
박필기 기자 | 승인 2021.04.23 14:25

3기 신도시로 개발되는 ‘하남 교산지구(춘궁·교산동)’는 대규모 택지개발의 신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그동안 한성백제의 왕성이자 도읍지로 주목받아온 지역이 이곳 교산 지구이기 때문에 이곳의 문화재 고증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이다. (사진 오른쪽은 최정필(세종대 역사학과 명예교수) 전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이 1년전 하남교산지구 천왕사 심초석 현장을 방문 1만여평의 천왕사 부지의 시급한 발굴을 주장하고 있다/제공: KBS)

현행 중·고등학교 국정 교과서 조차 전체 백제시대(670년) 중 초중기의 AD475년까지의 한성백제는 오간데 없고, 고구려의 침범으로 후퇴한 200여년도 체 되지 못하는 후반부 웅진·사비시대( 지금의 공주·부여)만 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는 한성백제를 대변할 수 있는 문화재라든지 유적이 부족하거나 아예 고증을 하지 못해 정작 중요한 온조대왕 건국부터 백제의 융성기간인 약 475년까지의 한성백제 시대를 고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성백제의 첫도읍지이자 왕성의 뿌리 찾기는 우리나라 고대 역사의 가장 큰 과제중 하나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때문에 ‘잃어버린 한성백제의 첫 도읍지’를 두고 오늘날까지 하남 교산지구냐 풍납토성이냐를 놓고 자치단체 간 논란만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조만간 사라져야 할 교산 지구의 문화재 조명은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다.<편집자 주>

▲ “한성백제의 첫도읍지 왜 하남일까”

한성백제의 첫 도읍지이자 왕성을 두고 서울 강동구의 풍납토성과 하남시의 교산지구를 놓고 학계의 주장은 상당히 엇갈린다. 양심 있는 사학자들은 하남 교산지구를 지목하는 반면 자치단체의 의뢰를 받은 사학계는 풍납토성을 한성백제 왕성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풍납토성은 수 십 년간의 대대적 발굴에도 불구하고 왕성으로 볼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 문화재가 거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반면 하남 교산지구는 여러 정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무관심으로 유력한 문화재들의 고증에 외면 받아왔다는 데 있다.

사학계의 한종섭 백제문화연구 회장과 오순제 박사, 강찬석 교수, 이희진 교수 등에 따르면 하남 교산지구가 한성백제의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이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반면 풍납토성은 한성백제의 왕성으로는 근거가 거의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에 따르면 우선 풍납토성은 21세기 한국 고대사학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지역이 단연 풍납토성이다. 대형 건물터와 와당 등 풍납토성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성 백제 유적과 유물은 학계를 넘어 국민들마저 흥분케 했다.

장수왕이 이끄는 고구려 군에 의해 무너진 하남위례성, 1500년간 사라진 백제의 첫 도읍지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만한 사료는 실망감만 안겼다.

서울이 내세우는 몽촌토성은 6만7천여 평이며 풍납토성은 17만여평 규모이다. 같은 시기 고구려 장안성은 358만평, 신라 월성 왕경은 484만평 규모였다. 고구려와 신라에 경쟁하던 백제 왕성이 이들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초라한 규모라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심지어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급박하게 옮겨간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인 웅진성도 200만평이 넘는다. 풍납토성이 왕궁지라 하기에는 스케일부터가 동시대 다른 왕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규모인 것이다.

풍납토성이 백제의 왕성이라면 고구려 장안성과 신라 왕경에서 볼 수 있는 조방제에 의해 계획된 격자형 도시구조가 나타나야 한다. 이것은 주나라 이래 동아시아 도성을 건설할 때 교과서적인 틀로 자리 잡았왔던 관례였다.

당시 일본에 건설된 도시들도 격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풍납토성에는 이러한 도시 구조를 찾아볼 수 없다. 주류를 이루는 육각형 집들은 일정한 축도 없이 아무렇게나 배치돼 있고 도로도 정연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육각형 건물은 약 23평 정도 규모로 왕성의 건물로보기는 초라했다.

또한 백제가 과연 왕성을 강변에 위치한 곳에 지었을까. 한강변에 위치한 풍납토성 일부는 이미 홍수로 쓸려간 상황이다. 한 나라의 왕성을 홍수피해가 심한 강변에 둔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지적했다.

한성백제 기간 동안 왕궁이 장마나 홍수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이로보아 왕궁은 한강으로부터 일정거리 떨어져 있었다고 봐야 한다. 삼국사기 문헌에도 하남 위례성 서쪽에는 넓은 개활지가 있어야 하고, 주위가 온통 산이며, 하늘이 내린 험한 지형 즉 ‘천험지리’한 땅이어야 한다. 그러나 풍납토성은 이와 같은 내용에 맞지 않고 지형과 달라 백제의 왕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 고구려 국내성이나 장수왕 때 평양성으로 옮긴 왕성인 안학궁에서는 1미터가 넘는 대형 주춧돌이 2590여개가 출토돼 웅장한 건물 규모와 광활한 건물지를 나타내고 있으나 풍납토성에는 23센티 지름의 기둥만 여러 개 발견됐을 뿐 심지어 20~30센티의 주춧 돌 조차 찾아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천왕사나 교산동 교각지는 왕궁 입증 단초

풍납토성이 왕성으로서의 부적격한 사료들로 지적받고 있는 가운데 교산 지구의 교산동 교각지(대형 주춧돌)나 인근 천왕사지와 목탑의 심초석은 백제의 왕성으로서 뒷받침 할 수 있는 유력 사료로 주목받아 왔다.(사진은 80m 높이의 경주 황룡사 9층목탑 조형도)

하지만 문제는 이곳 교산 지구는 문화재 당국이 20여 년 전 수개월에 지나지 않는 형식적인 발굴로 겉핥기 조사에 그치며, 심지어 당시 출토된 외부에 드러난 심초석 외 연대가 훨씬 오래된 것으로 추증되는 심초석을 다시 땅속에 되묻으면서 한성백제의 역사를 입증 하지 못했다.

‘하남설’을 주장하는 사학자들은 삼국사기가 시사하는 백제 왕성은 ‘북쪽으로는 한강을 띠처럼 두르고 있고,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내는 검단산을 동쪽으로 두고, 뒤로는 남한산성을 둔 험난한 지형 가운데 있는 땅, 한성 백제의 성벽과 유물이 출토된 이성산성을 앞으로 두고, 서쪽으로는 넓은 개활지가 열린 땅’으로 하남이 적임지 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하남은 1미터 이상의 대형 주춧돌이 무수히 발견됐으며 특히 천왕사 심초석은 황룡사 9층 목탑에 필적하는 심초석으로 하남시 교산동에 있으며 현재 발견된 것 외에도 한 개가 더 땅속에 묻혀 있어 이를 발굴 고증해야 한다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곳 심초석은 지름이 무려 205cm로 경주의 황룡사 목탑(탑신부 약 65m, 상륜부 15m, 전체 80m구층목탑(九層木塔))에 필적하는 규모로 한국 최초의 목탑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며 하남의 교산·춘궁동 일대가 규모나 유적유물 발굴에서 풍납토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료들이 백제의 왕성을 입증하는 사료라고 말했다.

불교가 삼국시대 초 백제에 처음 들어오면서 신라로 전해졌고, 신라는 불교문화를 백제로부터 받아들여 왕성인 지금의 경주 월성 왕경에 황룡사9층 목탑을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백제의 기술을 전수받은 것으로 기록되 있다.

황룡사 목탑 건립당시(553~574년) 백제의 명공 아비지와 장인 2명을 초청해 소장 200여명의 기술자들과 함께 지은 연대를 볼 때 지금의 황룡사와 9층 목탑 건립 이전에 이미 백제에는 목탑을 지을 수 있는 장인과 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로 건너간 장인들은 이곳 교산 지구의 천왕사 목탑건립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돼 신라보다 훨씬 이전에 천왕사와 목탑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사학계로부터 나오고 있다.

최정필(세종대 역사학과 명예교수) 전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은 1년전 하남 교산지구를 방문 “천왕사가 존재했던 절터는 1만여 평이 넘을 것으로 추증 된다"며 “백제역사문화 고증을 위해서도 이곳의 체계적인 발굴과 조사가 시급하다"고 밝혀 하남의 문화재 사장 우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따라서 신도시개발을 앞둔 교산 지구 문화재 발굴과 고증의 시급성은 어쩌면 지금도 수수께끼처럼 뒤엉킨 우리나라 고대사(삼국시대) 전체의 비밀을 푸는 중요한 키 일수 있다는 측면에서 “개발에 밀린 역사현장 사장”이라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박필기 기자  ppk91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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