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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의 첫 도읍지는 하남이다”<기획2>몽촌·풍납토성 주장은 역사왜곡, 사학계 양심적 사실고증 밝혀야
박필기 기자 | 승인 2021.03.25 15:11

하남 교산지구는 3기 신도시 개발로 지정, 대규모 택지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개발도 좋지만 이곳에 묻혀있을 한성백제의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문화유적이 영원히 잠들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사진은 교산동 건물지)

하남은 한성백제의 첫 도읍지이자 왕성으로서의 주요 지역임이 오래전부터 주목받아왔다. 수십년전 예산부족으로 제대로 된 발굴조차 하지 못한 체 부분발굴에 그치며 수박 겉 핧기 개발이라는 지적과 함께 당시 백제시대 사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당시 현장을 목격한 향토사학자들은 발굴된 대부분은 지표면의 사료들이고 심층적인 발굴이 부족한가운데 진행, 역사가 오래된 삼국시대로 추증되는 심초석의 경우 다시 땅속에 그대로 묻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의혹을 증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신도시 개발에 앞서 춘궁·교산동 곳곳에 흩어져 있는 훼손된 문화재와 방치된 문화재를 고증해 과연 하남의 문화재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과제로 남아있다. 이에 ‘하남타임즈’는 기획연재(5부)로 하남의 문화재 현주소를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 학자들의 다양한 ‘하남 존재설’ 설득 더해

하남이 한성백제의 첫도읍지라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사진은 교산동 건물지 주춧돌로 왕성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현장 모습들)

도읍지이자 왕성으로서의 규모나 환경이 현재의 교산지구(춘궁, 교산동)일 수밖에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송파나 강동이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을 앞세워 이곳이 첫 도읍지라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백제역사 전체가 왜곡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하남이 한성백제의 첫 도읍지라는 주장은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이미 오래전에 거론돼 왔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인 다산 정약용부터 현대 초 이병도 박사 최근의 오순제, 이희진, 도수희, 한종섭 씨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주장은 결코 편협 된 사고가 아니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백제의 도읍지는 이성산’이라는 주장과 현재는 고인이 된 고 이병도 박사(서울대 역사학 교수·1989년 작고)는 “하남위례성은 이성산이며 백제의 첫 도읍지였다”는 주장으로 하남이 백제의 첫 근원지로서 대내외에 알려져 왔다.

특히 오순제 교수는 ‘한성백제의 첫도읍지가 하남’임을 주장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20년 이상을 하남시 곳곳을 답사하며 하남 교산·춘궁동 일대가 한성백제의 첫 도읍지인 ‘하남위례성’이라고 강력히 제기해 왔다.

이희진 교수 또한 역사문화 건축의 권위자인 강찬석 문화유산연대 대표와 함께 “잃어버린 백제의 첫도읍지”라는 책을 공동 편찬하며 하남이 첫 도읍지 일수 밖에 없는 환경과 사료, 지명 등의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며 ‘하남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오순제 교수는 일찍이 검단산에 동명제단이 있는 것은 백제의 왕들이 왕위에 오른 후 하늘에 제사를 지낸 중요한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검단’이란 명칭은 ‘신성하다’란 의미고, ‘단’은 ‘제단’을 뜻한다며 백제는 검단산을 신성시 해 왔다고 말했다.
 
강찬석 문화유산연대 대표는 “하남시 춘궁동이 한성백제의 초기 첫 도읍지임에 틀림없다”며 “하남에 대형 목탑의 흔적이 있는 것은 백제의 지배이념으로 작용한 불교가 이 지역에서 융성한 것으로, 이곳 일대만해도 대형 탑과 사적지가 많아 왕성이고 도성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충남대 도수희 명예교수도 하남이 백제의 첫 도읍지라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펼쳐온 대표적 원로 학자로 유명하다.

여기에 하남출신 향토사학자인 한종섭 회장는 하남이 한성백제의 첫도읍지 주장으로 평생을 백제역사 문화 연구에 살아온 사람이다.

한 회장은 현재 백제문화연구소 회장으로 그는 오래전부터 “하남은 역사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전해지고 있는 경주보다도 더한 문화재 보고가 하남”이라고 주장하며, “이곳 일대는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 같은 토성의 흔적은 흔한 실정이라며 토성하나만 가지고 백제의 도읍지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민망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 과연 어디가 한성백제의 첫 도읍지일까

지금까지 한성백제의 첫도읍지로 주장돼온 곳은 3곳이다. 서울시와 강동구를 중심으로 주장하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그리고 하남시 춘궁·교산동 일대가 첫도읍지로 초점을 모으고 있다.(사진은 백제 초기의 축성으로 밝혀지고 있는 이성산성 외곽모습)

백제 왕조는 67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AD475년까지를 한성백제시대로, 이후 670년까지의 185년을 웅진(공주)·사비(부여)시대로 분류한다. 한성백제는 도읍지를 한강을 기점으로 하북위례성과 하남위례성으로 나누며 하북위례성의 경우 건국초기 불과 수년의 짧은 기간이었기에 국가로서의 기틀조차 미미한 수준으로 첫 도읍지를 논하기에는 무리일 듯 하다.

이에 따라 한성백제의 첫도읍지인 ‘하남위례성’ 위치를 두고 서울의 송파·강동과 하남을 두고 어디가 정확한 위치인가가 지금까지 끝없는 논란을 야기해 왔다.  서울은 당초 몽촌토성 발견 후 이곳을 왕성이라고 주장하다가 이후 풍납토성이 발견되면서 이곳이 진정한 백제의 첫도읍지라고 말을 바꾸며 ‘풍납설’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은 최근 ‘한성백제박물관’까지 지어 풍납토성이 벡제의 왕성으로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시도해 왜곡된 역사를 공식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과 지적을 받고 있다.

문화재관리청과 서울시는 지난 2015년 ‘풍납토성이 백제왕성 이었다’는 학계의 일부 주장을 근거로 이 일대 20여만 평을 문화재 지구로 개발을 위해 이를 반대해온 지역 주민과 마찰을 빚어온 가운데 풍납토성이 백제의 왕성이었다는 정책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심포지엄을 열었었다.

하지만 문화재관리청과 서울시의 주장과는 달리 지난 2015년 7월 13일 오후 서울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이희진 역사문화연구소장은 “평범한 유적지에 불과한 풍납토성이 무리하게 백제왕성으로 비화됐다”고 비판했다.

당시 이 소장은 “기록들을 확인한 결과 기루왕(재위 77~128년) 40년과 개로왕(재위 455~475년) 21년에 각각 ‘여름에 큰 비가 내려 한수가 넘쳐 민가가 떠내려갔다’는 등의 내용이 있는데, 침수피해가 불가피한 한강 옆에 왕성을 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풍납토성은 발견된 유적 중 왕성 규모에 맞는 주춧돌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왕성이었다면 당연히 왕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왕궁의 흔적으로 발견됐다는 유물들은 왜곡과 과장이 덧붙여지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왕궁을 지으려면 상당한 굵기를 가진 수백 개의 기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주춧돌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비슷한 시기의 고구려 장수왕 시절 지은 안악궁에서는 대형 주춧돌만 2590개가 발견돼 풍납토성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주장이다. 주춧돌의 지름이 불과 20~60센티인 풍납토성에 비해 이곳의 주춧돌은 80~100센티가 넘는 경우가 허다해 궁으로서의 규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풍납토성의 우진육각형(찌그러진 형태의 육각형 구조) 집터 구조 자체가 왕성에 맞지 않는 수준”이라며 “건축 구조적으로 봤을 때 우진육각형 집 구조에서의 기둥은 벽식구조의 기둥으로, 기둥형식을 띤 벽기둥인 셈인데, 이는 단순 벽식구조보다 더 원시적인 형태”라는 것이다.

그는 이외에도 고구려 장안성, 백제 웅비성 등 200만~500만 평 규모의 왕성과 달리 풍납토성은 겨우 20만 평 규모로 왕성이라고 불리기조차 초라한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 동아시아권 왕성에서 발견되는 격자형 도시계획 구조가 확인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풍납토성이 백제왕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었다.

반면 하남의 춘궁·교산동은 달랐다. 대형 주춧돌이 곳곳에 산재했으며 교산동 교각지 주춧돌 지름이 1미터 내외에 이르며 이같은 건물터가 발견돼 왕성으로서의 규모에 손색이 없음을 알수 있다.

특히 한종섭 회장은 인근 이성산성은 백제시대 조성된 축성으로서 백제의 첫도읍지와도 연계된 산성으로 보고있다. 또 춘궁동 왕궁지 터 남쪽에 위치한 천왕사지와 동사지는 신라의 황룡사 목탑지보다 더 큰 규모여서 이곳이 백제의 첫 도읍지로서의 손색이 없다고 주장했다.

성곽고고학 전문가이자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장을 역임한 심정보 교수(한밭대학교 명예교수)는 이성산성은 백제가 초축한 ‘백제산성’이라는 논문을 지난해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심 교수는 하남이성산성(사적 제422호)은 지정학적인 위치상 백제도성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백제산성이라는 의견과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면서 구축한 신라성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논문을 통해 백제설을 강조했다.

심 교수는 논문에서 “2017년도 한양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하남 이성산성 서문지 분석결과 이성산성은 4세기경 백제의 근초고왕이 일시적으로 천도했던 한성(漢城)이며, 고구려의 광개토왕과 장수왕이 백제의 국성(國城)이었던 이성산성을 함락시키고 고구려식으로 재건축해 사용하다가 마지막으로는 552년에 신라의 진흥왕에게 점령돼 신라식으로 개축한 흔적을 보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 남문 저수지에서는 한성백제시기 토기편이 출토됐으며, 그 상부에서 고구려 유물과 신라․통일신라 토기들이 출토돼, 초축과 중축에 따른 시기를 엿볼 수 있었다며 이성산성의 운영시기는 결론적으로 백제가 초축 한 ‘백제산성’이라고 결론지었다.

앞서 지난 2005년 하남시청에서는 ‘이성산성 국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으며 “교산동이 한성백제의 첫도읍지”라는 주장이 제기 됐었다.

당시 김윤우 단국대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위례성에 관한 하남의 역사지리 고찰’에서 하남이 한성백제의 도읍지 일 수밖에 없는 근거와 이론을 제시했다. 물론 고고학적 측면의 관점에서는 서울 소재설이 좀더 학계의 우세를 점하고 있으나 하남지역 소재설 또한 일찍이 18세기 다산 정약용에 의해 주장돼와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설로 아직까지 어느 학설이 정설이라는 단안은 내려지지 않았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예부터 하남위례성지로 주목받고 있는 하남시 고골 일대를 중심으로 한 주변이 지역의 역사성 땅이름에 관한 역사지리적 고찰에서 하남이 더 정설에 가까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 교수는 삼국사기 백제 건국사화에서 하남위례성지의 동고악은 현 하남시 동부의 검단산 이며 온조왕 13년 위례성의 한산(漢山)은 바로 현 남한산이라고 조명, 하남이 하남위례성의 위치임을 짐작케 한다고 주장했다.

교산동 토성과 춘궁동 이성산성은 모두 한산하(漢山下) 곧 남한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고성(古城)이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의 경우 한수변(漢水邊)으로 기록하지 한산하(漢山下)로 기록하지 않다는데 반론을 둔 주장이었다.

또한 하남위례성의 근처에는 왕실의 곡물을 공급하기 위해 경작하던 왕실의 전지(田地)인 위례성전지가 있었으며 위례성전지가 있었던 곳은 검단산 서부지역인 지금의 창우동 일대 ‘작밭들’이 있었으며 지금의 하남지역에 위치해 있었다고 말했다. 상사창동과 하사창동은 이들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로 의미가 담겨있는 지명임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와 같이 하남의 역사 지리에 의한 각종 지명에서부터 하남이 한성백제의 도읍지로 볼 수밖에 없는 근거가 도처에 산재해 있음을 제시해 하남이 한성백제의 주요 무대였음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왕성에 걸맞는 제대로 된 초석조차 출토되지 않은 풍납토성이 이곳에서 발견된 유적·유물의 고증을 떠나 지명의 의미에서부터 하남에 비해 도읍지로서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하남은 현재 교산 신도시 개발로 백제의  첫도읍지라는 역사적 의미를 증명하지 못한체, 또한 제대로된 발굴조차 하지 못한체 신도시 개발로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신도시 개발도 좋지만 한번 파괴하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문화재 고증부터 우선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유병기 하남문화원장은 “앞으로 한성백제 첫 도읍지에 대한 연구와 발굴은 정부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 조선왕조에 비견돼는 500년 역사를 가진 국가의 도읍지를 찾지 못한다면 사학계의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왜곡되지 않고 정상적인 발굴과 연구를 통해 바른 역사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필 전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2019년 7월 동향에서 발행되는 경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교산 신도시와 관련, “이 지역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이미 발굴을 다 마친 것으로 보고돼 있지만 실제 이 지역은 부분적 발굴이 시행됐다”며 “단 한 차례도 전면적인 발굴이 시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전 이사장은 “신도시의 생성을 무턱대고 막아선 안 되지만 교산지역 일대가 역사적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으로 앞으로 발굴여하에 따라 더 놀라운 가치를 찾을지 모르 곳인 만큼 이 기회에 전면적인 발굴을 시행해야 한다”고 밝혀, 하남시 문화재 실태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박필기 기자  ppk91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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