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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길 목사] 막대기 달린 고기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6.01.20 09:06

   
▲ 문 용 길 목사
지금은 30대 후반이 되어 아이 엄마들이 된 딸의 어릴 적 친구들이 너덧 살 먹었을 무렵,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 아이가 “나는 막대기 달린 고기가 좋아, 오늘도 먹고 싶어, 가시달린 고기는 싫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 표현이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말은 갈비가 좋고 생선은 가시 때문에 먹기가 어렵고 힘들어 싫다는 말이다. 나는 그때 아이들이 쓰는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막대기 달린 고기라, 얼마나 기발한 아이들의 말인가? 막대기 달린 고기, 가시달린 고기라….

우리 어려서는 막대기 달린 고기, 갈비 특히 소갈비는 먹어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통 기억이 없다. 더구나 고향이 항구인 군산이고 보니, 단백질은 주로 생선을 통해 공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좋은 단백질을 섭취했다는 판단이지만, 어디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으로 위로 받을 지식이나 경험이 없었기에 오히려 생선을 많이 먹게 된 환경과 조건을 비하시키는 입장으로까지 되어버린 우리의 옛날은 그저 ‘막대기 달린 고기가 최고여!’ 라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생선을 많이 먹는 것을 열등감으로 까지 생각한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 픽하고 웃음까지 동반하고 있으니, 우리 자신들의 평가는 여전히 수준에 못 미친다.

막대기 달린 고기, 사실 비유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본질적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말에 뼈가 있다는 언중유골이라는 말도 있고, 흔히 갈팡질팡하며 어떤 사안에 대해 올곧은 자기 판단에 확신이 없을 때, 뼈 없는 놈이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는 사회에서 우린 실제로 막대기 달린 고기 역할을 하거나 존재감을 보여주는가 하는 반성이 앞선다.

뼈 없는 동물하면 흔히 연체동물로 즉답이 나온다. 약간은 모멸감도 주는 말이어서 사실적인 이름에도 묘한 뉘앙스가 풍기는 낱말이지만, 연체동물, 뼈 없는 동물, 그러면 어떤 인물들이 떠오를까? 요즈음이면 국회의원? 선거전에서는 미사여구를 끝없이 늘어놓다가 입성하면 완전히 다른 형태의 동물로 변신한다. 아무리 로버트가 자동차로 변하는 카봇 또봇시대라고는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무위원들은 대통령이라는 통치수반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체제이지만,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국민들의 입이라는 사실을 또 눈과 귀라는 사실을 그날부터 망각하는 변신의 귀재로 바뀐다. 이때부터는 연체동물에서 한 단계 진화하여 카멜레온으로 자리를 잡는다.

“지금 남 말 할 때입니까?” “아니 내가 못할 말 했습니까?” “당신은 기독교 신자요 목사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내가 뭐 틀린 말을 했습니까?”

정치인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는 없다. 내 말, 아니 내 집안의 말을 하려고 이렇게 입을 열었다. IMF 때 미국에서 어느 잡지는 우리 대한민국을 가리켜 ROTC 라고 말했다는데, 다시 말하면 The Republic of Total Corruption, 이런 오명을 갖게 되었으니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총체적 부패공화국이라는 말은 어느 누구도 한국인이라면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못을 박아둔다.

이런 사회에 주님이 부탁하신 명령은 어둠을 밝히는 빛, 부패한 사회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절대 절명의 이 명령은 입에, 귀에, 손발에 달고 살아야 할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 명령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명령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옛날에는 교회명도 어떤 이름이 많았는가? 광염교회 염광교회 빛과 소금교회가 많았는데, 지금은 하나 되자는 내부 분열로부터 일치를 촉구하는 한마음, 한소망, 한샘, 한사랑이 각광을 받는 이름이 되었고, 많고 큰 의미를 나타내는 이름이 대세가 되었다. 이젠 이름에서부터 뼈있는 교회명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교계다. 우리교회는 세상에서 중앙이요 우리교회는 지역사회에서 제일이요, 또 우리교회는…, 마치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막대기 달린 고기를 좋아하는데, 교회는 뼈 없이 흐물흐물 거리는 도무지 엉길 힘이 없이 늘어진 모습이니 오늘의 현실에서 누가 교회를 좋아하겠는가? 갈등과 고민, 자괴감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파도처럼 우리 자신들을 덮친다.

21세기의 순교자는 독재사회나 강력한(?) 종교와의 갈등에서나 드러나고, 진정한 백색순교자는 찾아볼 수 없으니 이런 모습대로라면 주님의 한탄이 적중한다.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들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 말씀을 듣기 원한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칠천을 남겨 두었다.”

우리 막대기 달린 고기가 되자, 아니 주님이 검을 가지라 하셨으니, 가슴 깊은 곳에 비수를 품자!

흐물흐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꼿꼿한 신앙인이 되자! 주님과 시대의 요청이다.
 
한마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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