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한국마당
[황인찬 목사] 평화를 원하는가?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5.12.02 07:48

   
▲ 황 인 찬 목사
대강절 첫 주일을 시작으로 성탄시즌을 맞이하였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선지자 이사야도 예수님을 평강의 왕으로 소개 하였다.

IS(Islamic State-이슬람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가 이끄는 조직으로 알카에다 이라크지부에서 출발해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이슬람국가(Islami State, IS)'를 자처함.)의 지난 10월 10일 터키 수도 앙카라 자살 폭탄테러(128명 사망)를 비롯하여 러시아 여객기 폭파테러(탑승객과 승무원 224명 전원 사망) 11월 12일 레바논 베이루트 테러(43명 사망, 200여명 부상) 프랑스 수도 파리 테러(132명 사망, 200여명 부상) 아프리카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대통령 경호원들이 탄 버스 테러(13명 사망 16명 부상) 등등으로 지구촌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의 위협을 두려움으로 받고 있다. 모든 사람의 관심이 평화에 쏠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탄이 주는 평화의 메시지는 더없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수님이 주신 이 평화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또한 이 시대의 슬픔이다.

예수님이 주신 평화에는 적어도 세 가지 기본 개념을 가진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 하는 데서 발견하는 평화로 이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한다. 양심의 관계에서 체험하게 되는 마음의 평화도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평안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창조하는 평화를 우리는 화평이라고 부른다.

평화는 곧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누가복음 1:78-79, 로마서 8:6, 누가복음 10:6절에 나오는 평화(평안)는 구원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 평화는 곧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점에서 구원과 동일한 것이다(참고/눅 10:5,6). 평화를 구원으로 보는 관점에는 죄 문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죄가 있는 이상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영원히 하나님과 평화할 수가 없다.

죄는 평화의 적이다. 예수님이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죄의 용서를 가장 무게 있게 다루시고, 교제의 대상으로 세리와 창기들을 선택하시며, 종국에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자신을 희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죄의 해결이다.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진정한 평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를 논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죄 문제를 너무나 소홀히 다루고 있다. 심지어 예수님이 주신 평화를 말하는 신자들마저 불행하게도 하나님과의 진정한 평화는 한 쪽으로 밀쳐두고, 지상의 평화만을 추구하고 주장하는 경향이 너무 짙어 안타깝다. 현실을 냉정하게 영적으로 바로 직시해야 한다. 이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주인공들이 누구인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을 계속하는 죄인들이다. 우리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평화의 침해자들이 누구인가? 죄를 아무 두려움 없이 범하는 악한 양심의 소유자들이다.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근본적인 화해를 하지 못하는 이상 이 세계의 평화는 절대 찾아오지 않고, 찾아 올 수가 없다. 살인과 전쟁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는 인간사회에서 평화를 구하는 것은 사막에서 장미를 찾는 것보다 더 맹랑한 일의 다름이 아니다.

이사야 11:6~9절에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임하면 눈앞에 나타날 해됨도, 상함도 없는 평화의 파라다이스(paradise)를 그리고 있다. 거기에는 이리, 표범, 사자, 뱀, 어린양, 어린 염소가 어린 아이와 같이 놀며 지낸다. 진정한 낙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로 말씀 그대로도 성취되겠지만 이리 같이 간사하고, 표범같이 포악하며, 사자같이 잔혹하고, 뱀같이 간사하고, 독한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 어린양과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된 사람들의 세계라는 뜻일 것이다.

죄로 부패된 짐승 같은 인간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워지면,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항상 평화가 충만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평화를 원하는가? 하나님과 먼저 평화해야 한다. 평화를 원하는가? 이 세상 사람들을 온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해야만 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기독교한국신문  webmaster@cknews.co.kr

<저작권자 © 기독교라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한국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기독교라인  |  등록번호: 서울, 아04237  |  등록·발행일자: 2016년 11월 23일  |  제호: 기독교라인  |  발행인: 유달상  |  편집인: 유환의
청소년보호책임자: 유환의  |  발행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순라길 54-1, 3층(인의동)  |  02)817-6002 FAX  |  02)3675-6115
Copyright © 2021 기독교라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