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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약자들은 왜 교황에게 매달렸는가(?)데스크탑 75

교황이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그가 서울공항에 내려 처음 만난 사람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이었다. 그리고 교황의 ‘낮은 행보’는 계속됐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 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 노동자, 위안부 할머니, 음성 꽃동네 장애인 등을 만나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를 전했다.

교황의 3박4일의 행보는 대한민국의 정치인 및 종교지도자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교황이 만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회적 약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정치인들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선거철에 표를 의식해서 피상적, 아니 마지못해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황의 약자들을 향한 행보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던 사회적 약자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 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 노동자, 위안부 할머니, 음성 꽃동네 장애인, 어린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교황으로부터 위로받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것이다.

교황은 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를 않았다. 그리고 이들의 한을 풀어주었다. 왜 한국교회는 무엇이 무서워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한 교황의 방한을 조직적으로 반대했는가(?)

그것에 대한 분명한 해답은 여기에 있다. 사실 한국기독교는 국민들을 향해 행동 없는 사랑과 복음을 목소리 높여 외쳤다. 대신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부자들을 위한 종교로 변질되었다.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했다.

오히려 일부 한국기독교의 지도자들은 세월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쌍룡자동차 해고노동자,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쏟아 냈다. 한국기독교의 마이너스 성장은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기독교 최고 연합단체라고 자처한 모연합회의 수장은 대표회장직에서 물러나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교황 방한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대표회장직을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기독교인들이 2번에 거쳐 1천만명을 천주교회에 빼앗겼다는 설명을 늘어 놓았다.

한국기독교가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분명 낡은 시대를 끊어버리지를 못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지를 못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마디로 한국기독교는 타락한 로마교회와 유대교회와 마찬가지로이 땅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다. 오직 부자들의 울음소리만 듣고, 위로하는데 급급했다. 또한 강단에서 외치는 소리는 대부분 이들을 위한 설교였다. 한마디로 한국기독교는 스스로 율법주의에 빠져 들었다.

한국기독교가 희망이 없다는 말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일각에서 한국기독교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초대교회는 세상의 불의한 것들을 엎어버렸다. 그리고 율법도 뒤 엎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인 모두의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선포했다.

대한민국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약자들이 자기나라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가 아닌 교황으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체면치례에 바쁜 정치인들과 부자들을 위해서 존재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외면하는 한국기독교 종교지도자들에게 염증을 느꼈다. 오직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은 교황이 방한 것이 바로 교인을 천주교회에 빼앗긴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의 방한을 극구 반대했다.

한국기독교가 이들의 ‘한의 소리’를 듣고, 이들을 위로했다면, 세월호 희생자 가족,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 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 노동자, 위안부 할머니, 음성 꽃동네 장애인들은 교황에게 위로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한국기독교도 변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여는데, 그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상을 이 땅에서도 일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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