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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선교 130년을 점검한다(2)가난한 백성 외면, 권력 주변 맬돌며 대변자 자처

가난한 백성 의식화 교육 실패
 
선교 130년을 맞은 한국교회. 지난 130년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서 통렬히 반성하기는커녕, 잘못된 역사를 정당화하는 인사들의 발언을 두둔하고 나서 한국기독교의 자존심이 구겨 질대로 구겨졌다. 따라서 한국기독교는 일본 아베 신조의 군국주의 부활과 집단자위권 행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기독교의 목회자들은 선교 130년 동안 기독교인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나열하기에 바쁘다. 3.1만세운동을 비롯한 105인사건 등을 기독교운동으로 미화하고, 마치 독립운동의 주축이 한국기독교인들인 것처럼 포장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독립운동의 주체는 기층민중인 기독농민과 학생, 아녀자, 걸인 등이었다.

물론 3.1운동과 105인 사건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한 애국자가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가난한 기층민중들이 교회로 몰려왔으며, 나라 잃은 설움에 복받친 지식인들 역시 교회를 피난처로 삼았다. 그렇다고 독립운동의 공을 기층민중과 기독농민, 학생, 아녀자, 걸인 등이 아닌 기독교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당시 재한 선교들은 가난하고 무지한 조선인들에게 의료사업과 교육사업, 긍휼을 베풀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었다. 선교사들의 조선선교는 한마디로 빵과 복음이 전부였다. 이들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정치의식화 교육은 ‘정교분리’를 내세워 방해했다. 대신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일본정부에 협력하며, 조선인들에게 ‘기복신앙’과 ‘하나님의 뜻’, ‘종속적인 선교’만을 강요했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가 강단에서 ‘기복신앙’과 ‘하나님의 뜻’이 아무렇지 않게 외쳐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오늘 한국교회는 ‘종속적인 선교’ 형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선교초기부터 나타난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사회적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주범이 되었다. 오늘 한국교회의 일부 목사들이 권력자들을 대변하는 말을 쏟아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한국기독교 잘못된 역사인식에 대한 변명에서 나왔다는데 이의가 없다.

한국기독교는 선교 초기부터 권력의 주변에 맴돌며, 성장해 왔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의 목회자 대부분은 부정하고 싶지만, 이 같은 사실은 아서 브라운목사의 저서인 ‘극동의 지배’에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일어난 이후 한국선교부는 의병단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교회와 교인 한사람이라도 의병활동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한국기독교인들이 의병활동에 참여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밤거리를 다니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재한선교사들은 의병운동에 가담한 조선의 백성을 향해 무장한 폭도, 또는 피에 굶주린 야만인, 해적들, 반도적들로 매도했다. 또한 이토 히로브미를 암살하고, 심문을 받으면서 “나는 한국인이다. 그리고 나는 내조국을 위해 임무를 완수하고, 내 민족과 불운한 한국의  공개적 수치를 원수 갚게 되어 기쁘다”고 일경 앞에서 당당했던 안중근의사를 열광분자로 분류하기까지 했다.   

선교사들의 친일적인 행동은 이 뿐만이 아니다. 조선은 무력하게 썩어 있었고, 그 나라의 상황이 너무 비참했기 때문에 내부로부터의 정치 재탄생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악정, 부패, 부정, 궁핍의 시궁창이었다고 까지 표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조선은 일본이 아니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의 글을 서슴없이 썼다. 그리고 일본에 의해서 개혁,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다행스럽게 여겼다. 당시 한국기독교인 상당수가 1904년 형성된 친일단체인 일진회에 가담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 일본군국주의 부활에 침묵으로 일관

“한국의 기독교는 너무 부자가 되었다. 과거 한국교회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 선교를 감당해 왔다. 하지만 한국기독교는 1980년대 이후 이들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경쟁적으로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하며, 맘몬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강단에서는 ‘돈!돈!돈! 돈의 돈!돈!’이 외쳐지기 시작했고, 돈을 가진 자만이 교회의 직분을 맡는 세태가 되었다. 언제인가 한국의 기독교는 뒤를 돌아보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게 될 것이다”
 
130년의 한국선교 결과는             

그럼에도 분노한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여러 형태의 독립운동 단체을 만들었다. 또한 기독교 단체들은 ‘한국인을 위한 한국’,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비폭력 평화운동을 벌였다. 분명한 것은 애국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 대부분은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깨어난 지식인들이 기독교의 정신인 ‘평화’와 ‘정의’, 그리고 ‘사랑’, ‘근면’ 등을 받아들이면서, 비폭력 평화운동이 전국으로 번져 나갈 수 있었으며, 이것은 3.1만세운동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한마디로 재한선교사들의 일본 편향적인 종속적인 선교와 제국주의적 선교형태와 사뭇 다른 것으로, 한국기독교가 한국적 실정에 맞는 토착화를 실현하지 못한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선교 130년을 조망할 때에 이르렀다. 지난 130년동안 한국기독교는 미개하고 가난하며, 감정이 풍부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축복’만을 강조한 나머지 종속적인 신앙에 익숙해 졌으며, 제국주의적인 선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식민지 36년도, 6.25 한국전쟁도 ‘하나님의 뜻’으로 치부하는 한국기독교에 국민 대부분은 희망을 걸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속으로는 기독교인이지만 겉으로는 기독교인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의 말대로 한국교회의 하나님은 전쟁놀이를 좋아하고, 이웃나라를 종속시켜 핍박하는 하나님으로 변질됐다.

때문에 이웃교회의 교인을 빼앗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십자가탑을 경쟁적으로 높이 올려도 죄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 바벨을 노래하는 교인들의 목소리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여오고 있음에도, 한국교회가 의기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지어 선교사들이 한국선교를 위해서 남겨준 재산을 팔아 유용하고 있음에도,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교인 하나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다.

최근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뒤늦게 ‘생명’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노래 속에는 수 십 만 명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는커녕, 결국 정부의 5대 정책사업 캠페인을 벌이겠다고 나선 것은 결국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침묵을(?)

또한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집단자위권 행사 등에 대해 한국교회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 역시 선교 130년 동안 한국교회가 일본의 만행과 목회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외친 나머지 과거 일본의 만행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생각 있는 교인들은 한국교회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미국의 중국 팽창주의와 맞서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환영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인가(?) 묻고 있다.

이런 비판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한국선교 130년과 장로교의 날 행사를 대대적으로 갖고 있다. 분명한 것은 아무 의미 없는 행사라는 것에 한국교회가 동의하면서도, 애써 이를 부각시키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분열과 갈등으로 분열과 분열을 거듭한 나머지 위상이 크게 추락한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기념행사를 가질 수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 교파주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역사왜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실 한국의 기독교는 너무 부자가 되었다. 과거 한국교회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 선교를 감당해 왔다. 하지만 한국기독교는 1980년대 이후 이들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경쟁적으로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하며, 맘몬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강단에서는 ‘돈!돈!돈! 돈의 돈!돈!’이 외쳐지기 시작했고, 돈을 가진 자만이 교회의 직분을 맡는 세태가 되었다. 언제인가 한국의 기독교는 뒤를 돌아보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통렬한 반성 없이는 한국기독교가 민족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대한민국은 구한말 조선을 둘러싸고 일어난 열강들의 각축전의 현장과 매우 흡사하다. 이런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위해 한국기독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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