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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관 목사] 항일·극일, 그리고 승일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4.07.01 12:05

   
▲ 황 호 관 목사
독립유공자의 귀한 후손이 친일파로 몰려서 재상자리 바로 문 앞에서 부끄러움만 당하고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경위야 어떻든 무자비한 여론재판에 밀려서 강제 퇴출당한 셈이다. 명예는 어느 정도 만회했다고 하나 그 분은 당사자이니 차치하고라도 그 가족들이 당하고 받았을 상처와 아픔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고 면목이 없다.

7월 3일에 시진핑 중국 주석이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다 해서 구구한 해설과 함께 득실을 계산하느라고 정가의 참새들이 분주하다. 북한을 넘어 우리나라를 찾아준다니 눈물겹게 고마운 일인가 보다. 64 년 전, 6월 25일 새벽 북조선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를 생각하면 반갑게 맞이할 손님은 아니다. 그때 중국은 북쪽 손을 들어 주었고 응원하는 정도를 지나서 그야말로 개미떼 같은 군인들을 동원하여 인해전술을 폈고 우리 국군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서 후퇴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살을 에는 차가운 북풍설한을 온 몸으로 견디며 눈물을 머금고 통일의 꿈을 접어야했던 1.4 후퇴의 악몽에서 깨어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된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일본은 아직도 가깝지만 멀고먼 나라로,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렇게 남아 있다. 일재치하에서 우리 선조들이 당한 수탈과 간고를 어찌 잊으랴만 일본의 극우파들이 분별력 없이 쏟아내는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답지 않다고 말하면 오버하는 것일까? 일재치하에서 숨도 재대로 쉬지 못하던 그 때에 우리 선조들은 항일운동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애국선열들이 고귀한 피를 강산에 뿌렸던가? 그 모든 피들이 항일의 피요, 자주독립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그 당시의 악귀와도 같았던 일본 순사는 물론 일본 사람의 그림자도 본 일이 없다. 해방이후에 태어난 재수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나는 일본 사람이라는 말보다는 왜X 아니면 일본X 이라야 직성이 풀리는 것은 나는 어쩔 수 없는 조선인의 후손이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일 게다.

온 몸으로 대항했던 항일의 막은 광복절과 함께 내렸다. 무조건 항복 한다는 항복문서에 서명을 한 패전국 일본은 이미 우리가 대항할 가치조차 없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우리는 극일에 몰두했다. 일본은 극복해야 될 높은 산으로 대한민국 앞에 버티고 선 골리앗이었다. 그를 상대하는 우리는 목동 다윗이어야 했다. 축구를 해도, 야구를 해도, 하다못해 김연아 선수가 아사다 마오와 얼음판에서 스케이팅을 탈 때까지 이기면 좋은 것이 아니라 이겨야만 했다. 텔레비전 하면 소니, 전기밥솥은 코끼리 밥솥, 자동차는 도요다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삼성 텔레비전, 코코 밥솥, 현대 기아, 삼성SM 1,2,3 다 이겼다.

브라질 월드 컵 본선에 출전한 32개국 선수들의 평균 신장을 발표한 기사를 읽었다. 우리나라는 위에서 5위 일본은 끝에서 둘찌! 이런 정도를 가지고 좋아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보다. 우리는 이제 일본을 극복했다고 말하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것일까? 며칠 전에 일본 나고야를 방문했다.

처음 밟는 일본 땅이었다. 일본의 3대 도시가운데 하나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마음으로 웃었다. 우리나라 대구 정도의 도시라는 친절한 설명도 고마웠다. 대구와 나고야! 비교도 안 되고 게임도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나도 모르게 쾌재를 올렸다. 36년 착취당한 대한민국이, 그리고 호된 전쟁을 치르고 초토화되었던 대한민국의 아주 작은 사람이 여기 나고야에서 웃고 있다고 생각하니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승일의 길로 가야한다. 스스로 일본에게 발목을 잡혀서 한발작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옹졸함을 보일 것이 아니라 승자답게 패자의 투정을 받아 줄 아량을 보일만 하지 않은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빡빡 우겨도 거기에는 태극기가 독도 바람에 펄럭이고, 위안부!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생떼를 부린다고 해서 믿을 사람 하나도 없지 않은가? 우리 할머님들 몇 분 남지 않은 그 분들이 승일의 마지막 기수가 되어주신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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