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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목사? 목레기(목사+쓰레기)?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교회의 목사는, 국민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 중 하나였다. 여성들이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의사, 법조인, 그 다음이었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물량주의와 집단 교회이기주의에 빠져들면서, 목사의 위상은 급추락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맛을 잃고,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종교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목회자마다 대형교회를 추구하고, 교인쟁탈전을 벌이는 등 성경에 반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자들을 보살피지 않고, 부자들과 기득권자들의 편에 서서 바벨을 노래한 결과이다.

이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하늘을 향해 ‘하나님’을 부르며 절규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웃이 되지를 못했다. 대신 부자와 기득권들의 신앙공동체로 변질됐다. 오늘도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있다. 한국교회를 향한 계시이다.

여기에서 더 나가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권력자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막말을 퍼부어 이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의 자리에는, 희생자의 가족은 없고, 대한민국의 권력 핵심인 대통령이 그 자리를 차지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실 한국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가난한 학생들이 경주 불국사로 여행을 갈 것이지 배를 타고 제주도로 여행을 가다가 왜 이런 사단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을 깨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린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추모행사는 집구석에 할 것이지 왜 거리에서 하느냐” 등등의 발언은, 오늘 한국교회의 목사들을 ‘목레기’(목사+쓰레기), 또는 천박한 목사로 만들었다.

이러한 천박한 목사는 국무총리후보였던 문창극 장로의 친일적인 발언과 역사인식에 대해서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모교회의 간증에서 일제 36년의 식민지도, 6.25사변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건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언론사에 돈을 주면서까지 광고로 문장로의 발언을 감싸 안기에 나섰다. 또 한국교회 최고의 연합기관도 문 장로의 발언을 감싸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사회적공공성을 잃어버린 한국기독교는, 국민들로부터 몰매를 맞는 것도 모자라, 모든 언론이 한국교회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하나님의 뜻’과 ‘기복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교인 모두가 여기에 길들여졌으며, 세상 속에서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지를 못하고 있다. 빛과 소금의 맛도 잃었다.

선교초기 선교사들은 조선을 미개한 나라, 백성을 ‘무식하고 흥분 잘하는 백성’으로 매도했다. 심지어 일본의 조선침략을 ‘최고의 유익’이며, ‘행운’으로 여기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일본의 한국식민지를 ‘하나님의 임명’, ‘마땅히 순종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조선민중들의 민족주의적 교육을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막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위원회 아서 브라운총무는 재한선교사들에게 “패권을 차지한 일본이 ‘극동을 위해 휼륭한 것’들을 추구하도록 돕는 것이 미국의 ‘절대적인 의무’이며, 대단한 특권이므로 미국인들이 일본에게 ‘풍성하게’ 협력할 것을 바란다”고 재한 선교사들에게 일본의 극동지배 협력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선교는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오늘 한국교회가 강단에서 ‘하나님의 복음’ 대신 ‘하나님의 뜻’과 ‘기복신앙’이 외쳐진 나머지 천박한 목사들의 입에서는 계속 바벨을 노래하며, 모든 잘못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덮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변해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보듬으며, 사회적 양극화를 멈추어야 한다. 국민적 화합과 민족의 통일을 향한 화해와 화합을 노래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목사들에게 붙은 ‘천박한 목사’, ‘목레기’의 별칭을 뗄 수 있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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