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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관 목사] 울 엄마 생각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4.05.13 13:28

어머님 하늘나라로 가신지 이미 36년이 되었다. 어머니날이라서 새삼스럽게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리운 것이 아니다. 아침, 저녁, 시도 때도 없이 불현 듯이 보고 싶어지고 그립기가 한이 없다. 어머님을 뵙기 위해서라도 울 엄마가 계신 하나님의 나라로 속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아주 자주, 자꾸만 더 잦아지는 것은 아마 나이 탓일 게야 생각하지만 그만도 아닌 게 분명하다. 어렸을 때는 더 말할 것이 없었고, 젊어서도 그랬으니 말이다. 우리 아버지 말씀대로라면 울 엄마는 나주 정(丁)씨 집안의 맏딸 이었다. 16살적이라니 어려도 너무 어린 새댁이셨다. 홀시어머니를 모셔야하는 9대 독자 종가 집에 어리디 어린 나이에 시집오셔서 18살에 첫아이 낳은 뒤로 자그마치 9 남매를 낳으셔서 하나 잃고 8 남매를 길러 내셨으니 그 고생이 오죽 하셨을까? 아들이 뭐기에 아들 하나 낳아보자 하여 딸 여섯을 줄줄이 사탕으로 낳으셨단다. 일곱째! 9대 독자 집에! 딸부자 집이라는 이름이 얹어진 그 집에 금쪽같은 아들이 태어났으니 경사 중에 경사였단다. 그날 울 엄마는 한 없이 우셨단다. 좋아서 울고, 서러워서 울고, 너무 아파서! 가슴이 아파서 그렇게 우셨다는 서러운 얘기를 들려주실 적마다 눈물을 훔치시던 울 엄마시다.

그런 울 엄마의 삶은 어지간히도 고단하셨다. 논밭 귀퉁이마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호미 끝으로 파고 씨앗 넣을 자리만 있으면 심고 또 심으시던 그 어머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보리 고개를 넘던 그 시절 쑥이 파랗게 고개를 들고 쌉쌀한 쑥 향기를 날릴 때면 20리 족히 되는 금마 쪽 쑥 고개라는 곳으로 꼭두새벽에 일어나 쑥을 뜯으러 가시곤 했다. 쑥은 봄나물 캐듯이 그렇게 캐야 되는데, 거기는 아예 쑥밭이어서 낫으로 풀 베듯이 그렇게 종일 쑥과의 전쟁을 치르고 나서는 엄청 큰 마대 부대 아구까지 꼭꼭 눌러서 부대가 터져라 그렇게 쑥을 담아 머리에 이고 해 저문 저녁나절에 집으로 오셨다. 다음 날에는 온 집안이 쑥 냄새로 진동한다. 잘 삶아서 봄볕에 말리는 거다. 지금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게 된 연유를 나는 그 쑥에서 찾는다. 쑥은 반찬이자 든든한 요기 거리였다. 쑥 범벅, 쑥 개떡, 쑥국,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데 그만한 게 없었다. 요즘에 가끔 쑥 떡을 얻어먹을라치면 그때 그 맛이 지금도 입안 가득하다. 어머니는 아주 특별한 날에만 쑥을 넣어서 만든 쑥떡을 해 주셨고, 대개는 쑥 범벅으로 양식을 삼았다. 어린 나에게 쑥 범벅은 아주 묘한 먹 거리였다. 어머니는 짐승사료로 사용하거나 누룩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밀기울이라는 것을 싼 값에 사 오신다. 그 밀기울을 아주 촘촘한 채로 쳐서 제법 고운 가루를 얻어내셨다. 삶은 쑥과 그 가루를 잘 버무려서 채반에 얹어 가마솥에 쪄내는 것이다. 그것을 이름 하여 쑥 범벅이라 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갓 쪄내서 따끈할 때 입안 가득이 넣고 오물오물, 잘근잘근 씹는 맛은 절대로 싫지 않았다. 그때 그 추억의 먹 거리, 쑥 범벅이 향수처럼 그립다. 중2때 초여름이었다.

익산 시립문화회관(그때는 시공관이라 했다.)강당에서 반공웅변대회가 있던 날이다. 쪽머리에 베적삼! 울 엄마셨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이 큰일(?)을 한다고 응원오신 것이 분명타. 엄마의 그 응원이 힘이 되어 있는 대로 악을 썼고 당당하게 큰상을 받았다. 양 손에 꼬옥 쥐고 계시던 노란색 계란 두 알을 내미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그 얼굴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울 엄마는 예수님을 늦게 믿으셨다. 교회에 처음 나가신 그 이튿날 새벽부터 새벽기도를 하셨다. 66년도 늦은 가을로 기억한다. 불의의 낙상사고로 노동력을 상실하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나와 어머니는 농사일을 떠맡았다. 그날 나는 논바닥에 퍼져 앉아서 서럽게 울었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서 이렇게 농군으로 살다 갈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내 모습이 너무 초라했고, 서러웠다. 그래서 엉엉 소리를 내며 대성통곡하였다. 그런 나를 울 엄마가 끌어안고 펑펑 우셨다. 그렇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날은 그렇게 목 놓아 우셨다. 얘야! 보내 줄게 그만 울어라! 이 말씀이 울 엄마가 이 아들에게 들려주신 약속이셨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이다. 목사 안수를 받던 그해 4 개월 앞서 어머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목사 가운을 활짝 펴 엄마 무덤을 덮고 아프고 서럽게 그리워 너무 그리워 그렇게 울었다. 그 날이 78년 10월10일이었다.

아 어머니! 그리운 울 엄마! 뵙고 싶어라!  

예장개혁 증경총회장·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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