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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지도자 모세황인찬목사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2.12.06 10:05

   
▲ 황인찬 목사
히브리민족의 영웅이고, 지도자의 표상인 모세는 정치지도자이면서 영적 지도자로서 가히 가능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님의 섭리와 민족 사랑으로 과업을 성취시킨 불세출의 지도자다.

그의 이름은 ‘나일강물에 버려진 아기를 건졌다’는 의미로 ‘모세’라는 이름을 가졌다. 모세는 인구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히브리백성의 가정에서 출생하는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유아 살해명령 하에서 히브리인으로 태어났으나 부모의 믿음과 기지 그리고 그 가운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모세를 바로의 궁에서 자라게 하였다.

모세는 왕자로서 걸출한 학자들을 통해 제왕 학을 공부하였을 것이나 어머니의 품속에서 받은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자각과 민족의식을 지우거나 꺾지 못했다.

친어머니였으나 유모(乳母)로서 아들 모세를 양육했던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젖을 먹이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자기민족 히브리인에 대한 사랑’을 철저히 교육하였다. 그 결과로 ‘하나님 사랑’과 ‘민족사랑’이 모세의 한 인격 속에 튼튼히 자리 잡았다.

모세의 ‘하나님 사랑’과 ‘민족사랑’이 후에 파라오가 될 수 있는 기회라도 기꺼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는데 이 민족의식과 하나님 사랑을 지닌 마음의 태도는 그의 어머니의 철저한 교육의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젊은 날의 모세는 히브리인으로서의 민족의식과 궁중의 왕자의 신분을 가지고 누리는 자신, 그리고 노예로 전락하여 고역에 시달리는 민족 사이에서 느끼는 고통과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혈기 방장한 성정으로 인하여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 나름의 비전이 꺾은채로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모세가 애굽 땅을 벗어나 미디안 땅에 머물면서 그의 자괴감이 어떤 것이었을까. 당시 고대근동 지역의 패권국가인 이집트의 차기 파라오가 될 가능성을 가졌던 젊은이가 가슴속에 담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민족 사랑이 자기 인생을 암울하게 만들어 광야로 내어 쫓기게 되고, 도망자가 되었으나 자기 민족에게 어떤 선한 영향력도 일으키지 못한 채, 자기만 퇴락의 현장으로 내 몰리고 만 현실 앞에서 천리나 뛰는 분노가 충천하여 자기를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성경은 미디안 광야의 40년 각고의 세월 속에서 자신의 성품을 가다듬은 모세는 보편적 선입견을 깨고, 그의 온유함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더하였다(민12:3)고 증거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가.

보편적으로 물질과 환경 그리고 위치가 사람을 여유롭고 넉넉하게 하지만 사람의 깊이와 절제 그리고 고매한 인격은 오히려 자기를 부정하리만큼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내려놓음과 가난의 수용, 한계 상황을 넘는 통제를 통해 다듬어 지고, 세워지고, 훈련되어진다.

궁중에서 받은 제왕교육과 지도자로서의 덕목, 무사로서의 절제된 태도, 당대 최고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인 됨 등의 자의식을 황량한 광야의 삶 속에서 녹여 내리며 자기 능력과 한계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자기 존재를 성찰한 모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연히 깨닫게 되고, 가족을 돌보며 빈약하지만 자기 일에 충실한 범인(凡人)으로 살아가게 된다.

결국 모세는 자기 한계 안에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화시키므로 성경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고 모세의 긍정적이고, 성숙한 변화를 증거하고 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소란스럽고 고급문화를 즐기며, 권력이 있는 궁궐을 향해 꾸역꾸역 모여드는 형국을 하고 있다. 목사들은 거친 광야를 거부하고, 권력이 있고, 휘황찬란한 궁궐로 모여들고, 권력의 언저리를 맴돈다.

궁궐은 평온해 보이고, 권위적이지만 그곳은 언제나 피비린내가 스며있는 곳이며, 생존을 위해 암투하고, 죽고 죽이는 정글 이상의 장소가 아니다.

오늘 우리들은 궁궐을 떠나 광야로 나가야 한다. 광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말씀에 무릎을 꿇게 되고, 세미한 주님의 음성이라도 놓이지 않게 된다.

한국교회는 광야에서 돌이켜 보고, 목사들은 광야에서 궁전과 도성에서 입던 찢기고, 때 묻은 비단 옷을 벗고 목자의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가락지를 빼고, 사명을 위한 지팡이를 들어야 한다.

진정 목사다운 목사요, 목자로서 목사가 될 때 우리를 향하여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는 말씀의 적용이 우리에게도 혹 가능하지 아니할까.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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