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는 어지간한 경영서에도 찾아보기 힘든 정도의 처세술이 나와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한 아전 단속이며, 무엇을 위한 중용인가 하는 점이다. 한낱 성공적인 공직수행을 위한 행정 매뉴얼이거나 왕권 강화를 주장한 책이었다면 긴 세월을 견디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목민의 참된 목적을 묻고 정치의 본령을 찾는 데 있다. 즉 일찍이 「원목」(原牧)과 「탕론」(蕩論)에서 정치의 기원과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역설한 그는 『목민심서』에서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라고 말하면서 "백성을 두려워하라", "나 - 즉, 수령 - 라는 사람은 객(客)이요 저 백성들은 주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원목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면서 "백성 보살피기를 아픈 사람 돌보듯 하라(視民如傷)"고 말한다. 그는 또한 "아래 백성의 뜻이 통달하여 막힘이 없어야 백성의 부모라 할 수 있다"면서 수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북을 설치하게 하는 일이나 국왕의 교문(敎文)과 사문(赦文)을 "국문으로 번역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환히 알게 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같은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백성을 보살피는 정치와 소통을 중시하는 점에서 그의 정치관은 일면 국왕 정조와 비슷하다. 정조 역시 자신을 백성의 부모로 간주하여 중간에서 농간부리는 탐관오리를 제거하는 정치를 지향했다. 그는 수원 화성을 비롯한 도성 안팎을 다니면서 백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 했고, 또 자신의 조치를 국문으로 번역하여 게시하게 했다.
하지만 그런 정조도 '백성이 정치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정조실록』 22년 4월 27일 신유조(辛酉條)에 보면, "백성들과 더불어 일의 결과를 즐길 수는 있으나 더불어 일을 도모할 수는 없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국왕 자신을 비롯한 사대부의 몫이라고 한정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원목과 탕론에서, "백성을 위하여 목민관이 존재한다"고 하여 백성들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정치가라면 방벌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한 정약용의 생각은 자신의 스승이자 정치적 후원자였던 10년 연상의 정조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가 국왕과 백성 사이에 끼어서 국왕의 덕의(德意)를 차단시키는 '중간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역시 정조와 또 다른 목적, 즉 정치의 주체인 백성을 위해서라는 점이 주목된다. 국왕 정조와 달리, 현실정치의 경험 외에도 백성들의 눈높이에서 정치를 바라보았던 오랜 유배생활이 그로 하여금 이 같은 정치관을 같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필기  hanamilb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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