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서 곳곳에서 송년회가 열린다. 각종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사설단체나 친목단체에 이르기까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고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통해서 어제를 반성하고 내일을 꿈꾸는 시간이 바로 송년회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시끌벅적한 송년회를 하지 않고 힘들고 어렵게 사는 주위 분들에게 연말 선물과 기부로 대신하는 봉산단체들이 늘고 있다. 맛 좋은 음식과 술 그리고 여흥을 포기하고 낮은 곳에서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임들이 훨씬 많아졌다. 이런 변화를 보면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이전의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봉사와 기부 정신이 연말이면 더욱 활기를 띤다.

우리 하남시에는 초이동과 천현동 덕풍동 등 일부 지역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이 쾌 많다. 이 분들의 생활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찬바람이 사방에서 들어오는 비닐하우스에서 연탄으로 한 겨울을 나야하는 이 분들의 삶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 연탄마저 없어 지원을 받아야 하는 어르신들이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많이 있다.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근자에 들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연탄을 전달하는 봉사에 참여하면서 나를 되 돌아 보게 된다. 우리의 인생길이 늘 평탄하지 만은 않다. 늘 좋은 일만이 있지 않은 것이 우리 인생이다. 희로애락이 시도 때도 없이 굽이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누구든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칼바람이 불고 춥고 힘든 겨울에는 우리네 인생이 더 슬퍼진다.

그래서 이 때가 되면 시인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싯구가 저절로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느냐”

다 꺼진 연탄재이지만 함부로 보지 말라는 시인의 외침이 가슴에서 빙빙 돈다. 우리는 누군가를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짓밟고 건방을 떨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열정이고 희망인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꿈을 준 적이 있는가. 우리는 오직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헐뜯고 공격하고 사생결단의 길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이번 겨울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연탄을 전달하는 송년회를 보내면서 뜨거운 연탄 한 장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겨 놓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잠시라도 산다는 것은 참으로 다른 세상이다.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평범한 깨달음이 있어서 참 좋다.

오늘 저녁 송년회는 내가 아닌 내 아내와 아들을 위해 뜨거운 연탄이 되고 싶다.

박필기 기자  ppk91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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