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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글쓰기 방식과 중용의 정신
박필기 | 승인 2014.03.04 21:14

정약용 '목민심서'를 통해 배우는 신중한 글쓰기 방식과 중용의 정신!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너무 가혹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정약용의 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일면 '여유(與猶)'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즉, "망설이면서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같이 주저하면서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의 처세법인지도 모른다. 정조 사후의 '신유박해'와 같이 그가 살았던 살벌한 시대를 고려하면 이러한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듯한" 정약용의 태도는 잘하고 잘못한 목민의 사례를 드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즉 『목민심서』에 나타난 그의 글쓰기 방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약용은 선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이념형(ideal type)으로 설정하여, 전자의 경우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기술한다. 반면, 후자의 예는 다소 추상적이고 일반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산이 상정하는 대표적인 선한 사람은 국왕이다. 예컨대 "왕이 백성을 근심하여 나에게 말을 내렸거늘 왕의 은혜를 감추고 또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니"하는 대목과, "전하께서는 만리 밖을 밝히 보시므로, 천위(天威)는 나로부터 지척도 떨어지지 않았으니, 소신이 어찌 감히 삼가 공경하지 않으리요"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아전과 향청 세력은 전형적인 사악한 사람을 나타낸다. "이노(吏奴)의 무리는 배우지 못하고 아는 것이 없어서 오직 인욕(人慾)만 있고 천리(天理)를 모른다"는 것이나, "지금의 수령은 만백성 위해 홀로 외롭게 있으면서 간사한 백성(奸民) 3인 - 좌수, 우별감, 좌별감의 향청 임원 - 으로 좌(佐)를 삼고 교활한 아전 60∼70인으로 보(輔)를 삼으며, 거칠고 거센 자 몇 명으로 막빈(幕賓)을 삼고 성격이 패악한 자 수십 인으로 복예(僕隸)를 삼는데, 이들은 서로 패거리를 지어 굳게 뭉쳐서 수령 1인의 총명을 가려 기만하고 우롱하며 만백성을 괴롭힌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정약용은 또한 "포증이 개봉부를 맡아 다스릴 때 ··· 관아의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이 곧바로 뜰아래까지 와서 스스로 옳고 그름을 밝히게 하였더니 아전과 백성이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고 하여 좋은 사례는 거명까지 해가며 자세히 소개한다. 이에 비해 나쁜 사례는 다음과 같이 일반론으로 기술한다.

매양 보매 수령들이 기거하는 것이 절도가 없어서 해가 세 발이나 떠오르도록 깊이 잠들어 있고, 이속이나 장교 등 여러 일을 맡은 자들이 문 밖에 모여서 서성거리고 있으며, 송사하러 온 백성들이 무작정 머물러서 드디어 하루 품을 버리게 된다.

둘째, 옛날의 사례와 오늘의 사례를 대조시켜 과거의 선정(善政)과 현재의 악정(惡政)을 비교하고 있다. 숭고주의(崇古主義)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태도는 그 시대 대부분의 저술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 예다.

성인의 시대가 이미 멀어졌고 그 말씀도 없어져서 그 도(道)가 점점 어두워졌으니,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의 기를 바는 알지 못한다.

이처럼 예법(禮法)에 맞았던 과거 선정의 시대에 비추어 현재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곤 한 것이다.
청렴한 관리를 분류한 다음 대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청렴에는 세 등급이 있다. 최상의 것은 봉급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먹고 남는 것 역시 가지고 집에 돌아가지 않으며,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 한 필의 말로 조촐하게 가는 것이니, 이것이 옛날의 이른바 염리(廉吏)라는 것이다. 그 다음은 봉급 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바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은 것은 집으로 보내는 것이니, 이것이 중고(中古)의 이른바 염리라는 것이다. 최하의 것은 무릇 이미 규례로 되어 있는 것이라면 비록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지만, 규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죄를 먼저 짓지 않으며, 향임(鄕任)의 자리를 팔지 않으며 ··· 조세를 더 부과하여 나머지를 착복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오늘날의 이른바 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약용의 글쓰기 방식을 단순히 생존을 위한 처세법으로 간주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보다는 극단을 피해 중용을 취하려는 그의 정치관을 보여준다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는 극단적인 원칙을 고수하다가 좌절하거나 오히려 상황이 악화된 사례를 여러 곳에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수령의 절용을 강조하면서도, 병 치료를 위해 불피울 기름을 구해온 동자를 물리친 명나라의 순리(循吏) 장종련의 경우를 지적하면서 "생각건대 이는 너무 각박한 것이니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은 못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제가(齊家)를 주장하면서도 처와 아들이 관아로 찾아왔을 때 문을 닫고 들이지 않은 중국 양속에 대해서 "이는 과격한 행동이요 인정이 아니니 본받을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박필기  leehoony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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